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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의 말말말 혹은 일화들 Top 10 - (1)


-- 저에게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신 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분들 모두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시죠...
    대단한 분들, 저도 이분들처럼 부단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


1. 빌 게이츠
(Bill Gates가 Mt. Whitney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해준 인생 충고입니다.
 보통 명사들이 하는 그런 허황되고 꿈에 부푼 얘기가 아니라 그나마 냉정하고 
 잔혹한 인생 얘기가 담겨있음.. 머 세상이 그리 만만한건 아니죠 머 ㅎㅎ)

Rule 1: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Rule 2: The world won’t care about your self-esteem.
The world will expect you to accomplish something before you feel good about yourself.

Rule 3: You will not make $40,000 a year right out of high school.
You won’t be a vice-president with a car phone until you earn both.

Rule 4: If you think your teacher is tough, wait till you get a boss.

Rule 5: Flipping burgers is not beneath your dignity.
Your grandparents had a different word for burger flipping.
They called it opportunity.

Rule 6: If you mess up, it’s not your parents’ fault.
So don’t whine about your mistakes. Learn from them.

Rule 7: Your school may have done away with winners and losers, but life has not.
In some schools, they have abolished failing grades and they’ll give you as many times as you want to get the right answer.
This doesn’t bear the slightest resemblance to ANYTHING in real life.

Rule 8: Life is not divided into semesters.
You don’t get summers off and very few employers are interested in helping you find yourself. Do that on your own time.

Rule 9: Television is NOT real life.
In real life people actually have to leave the coffee shop and go to jobs.

Rule 10: Be nice to nerds. Chances are you’ll end up working for one.


2. 폴 에어디쉬

< 수학에의 열정 >
수학계에서도 업적을 먼저 발표하려는 싸움이 종종 있습니다.

한 수학자는 자신이 해결 못할 문제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지요.

실제로 에어디쉬가 가까운 공동 연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선권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숱한 수학자와 공동 연구를 한 에어디쉬 자신은 진리를 밝혀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세속적인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원생 시절 나는 삼류 수학자나 우선권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일류 수학자들이 그런 싸움을 하는 겁니다. 그들은 수학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에어디쉬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대해서 언제나 관대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그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오히려 누군가가 그걸 증명하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에어디쉬는 수많은 수학자를 손수 배출하였고, 수학자들에게 적절한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동시에 여러 동료와 가능한 한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매일 전세계의 수학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에어디쉬가 세계 모든 수학자의 전화번호를 안다는 우스개가 학계에 퍼질 정도였지요.
에어디쉬는 동료들이 수학적 예민함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한 번은 존이라는 유망한 수학자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쳤을 때, 에어디쉬가 그에게 문병을 갔습니다.

에어디쉬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존에게 수학 문제를 퍼부었습니다.

존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문제들을 풀어냈습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수학으로 용기를 주려는 에어디쉬의 배려였던 것이지요.


3. 에디슨

"오리슨 스웨트 마든(Marden, Orison Swett)"은 미국의 대표적인 성공운동가 이다. 자기개발, 성공, 행복에 대한 여러 책을 출판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 후 많은 성공연구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success紙를 발간하면서 성공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에디슨도 그 중 한 사람 이였다.
 
그 당시 꾀나 유명했던 마든 이지만 언제나 연구에 몰두했던 에디슨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디슨의 조수는 연구하고 있는 에디슨을 만나려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마든은 에디슨 연구소 주변에서 3주동안이나 야영을 하며 기회를 기다렸고 오렌지 밸리 로드에 위치한 울타리로 둘러싼 연구소의 문을 열번째로 두드렸던 그날 아침 에디슨을 만날 수 있었다.
 
마든은 조수의 안내로 에디슨의 연구소로 안내 되었다.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에디슨 도서관을 지나게 되었다. 에디슨이 그 동안 읽고 모아 두었던 개인 도서관 이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잘 갖춰진 도서관중 하나였다. 에디슨은 자기 스스로를 도서관을 읽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었고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에디슨은 수많은 독서를 통해서 지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에디슨과 마주 앉은 마든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어릴 적 얘기, 성공과 실패의 얘기, 집안의 내력과 발명에 대한 얘기..그러다 마든은 에디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발명 분야나 어떤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위한 첫 번째 필수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치지 않고 한가지 문제에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에디슨은 14년 동안 하루 평균20시간씩 일을 했다. 에디슨이 마흔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진짜 나이는 여든둘이라고 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한다면 그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이나 서부개척 모험담 같은 책을 읽지 않았고 기계학, 화학, 전기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했다. 이따금 독서와 더불어 오랫동안 집중하며 신중하게 사색하여 무엇이든 세밀히 관찰하는 능력을 길렀다. 그의 친구는 에디슨을 회상하며 에디슨은 잠을 자는 않을 때는 항상 공부하는 중이였다고 했다.
 
마든은 에디슨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성공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다소 엄격한 규칙을 제시하시는군요. 하루에 열 여덟 시간을 일해야 한다니.." 그러자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가 무엇인가를 합니다. 만일 일곱 시에 일어나서 열 한 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열 여섯 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산보를 한다거나 독서, 글쓰기, 생각 등을 합니다.
 
유일한 차이는 그들은 많은 일을 하고 나는 한가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문제의 시간을 한가지 방향으로만 적용한다면, 한가지 목표에만 집중한다면 그들은 성공할 것입니다. 성공은 반드시 몰두를 따라갑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리는 단 한가지 목표 말입니다. 성공은 정신과 육체를 가장 엄격하게 집중한 결과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발명가 에디슨이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집중력이었다.

 
4. 스티브 잡스

<
스텐포드대학 졸업식 초청 연설 >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감사합니다.




5. 워렌 버핏

주식투자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위런 버핏의 일화....

워렌버핏이 식당에 갔는데 서비스로 와인이 나왔다.

와인을 마실 생각이 없는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와인을 마시지 않을 테니 돈으로 주시오."

어느 날 버핏이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와 골프를 쳤다. 그런데 그 CEO 가 버핏에게 “이번 홀에서 당신이 2달러를 걸고 티샷을 해 홀 인원을 하면 내가 1만달러를 주겠다”는 내기 제안을 했다.

재미 삼아 한번 해 볼 수 도 있지만 버핏은 “그렇게 확률 낮은 도박은 안 한다”라며 정색을 하고 거절했다. 무안해진 CEO 가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2달러 갖고 뭘 그러느냐“라고 묻자 버핏은 이렇게 대답했다. ”2달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1만달러를 손에 쥐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이길 확률이 없는데 돈을 거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요“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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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l 2007.04.0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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